[정동현 셰프의 음식을 쓰다] 그리운 추억의 맛, 노포 중국집 BEST3

2019/10/17

한국의 전통음식은 불고기일까? 세계에 소개할만한 음식은 김치일까? 그러나 정작 불고기를 자주 먹는 한국인은 드물다. 앞에서는 클래식을 듣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메탈리카를 즐겨듣는 내 취향처럼, 한국의 자랑스러운 음식이 아닌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을 꼽자면 당연 ‘짜장면’이 맨 앞에 서 있다.

중국 음식이라고, 때로는 ‘짱깨’라는 비속어를 쓰며 낮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짜장면 한 그릇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생각해보면 이보다 가까운 음식이 없고 이보다 특별한 요리가 없다. 그리고 이 짜장면을 파는 오래된 중국집들을 보면 나이 든 어르신의 굽은 등을 보는 것처럼 애잔한 마음이 든다. 뼈는 휘고 살은 말랐지만, 여전히 근육이 살아 있다. 땀을 흘리며 느리게 걷지만 멈추지 않는다.

색바랜 간판을 달고 반들반들한 테이블 위에 간장과 식초를 올린 옛 중국집들도 마찬가지다. 중화 냄비를 잡는 노인은 주문이 멈출 때마다 앉을 곳을 찾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익숙하고 빠른 몸짓으로 벌건 불 앞에 선다. 가마솥을 뒤집은 듯 커다란 중화 냄비는 탈을 쓴 곡예사가 사자춤을 추듯이 위아래로 몸을 떨며 흔들린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웍의 숨결(Wok Hei, 鑊氣)’이라고 하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탄생한다. 냄새를 맡으면 채 식지 않은 주방의 열기를 타고 상긋한 채소와 부드러운 고기, 탄력 있는 면의 물성이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것 같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은 수십 년간의 노동에 익숙해진 나이 든 육신의 향기다. 그 향기를 맡기 위해 나는 서울 시내의 낡은 간판을 쫓는다.

광화문 뒷길의 50년 터줏대감, 동성각

그 발걸음이 가장 먼저 닿는 곳 중 하나는 광화문 ‘동성각’이다. 세종문화회관 바로 뒤 좁은 골목에 있는 동성각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기 쉽지 않다. 널따란 홀이 있는 1층과 방들이 좁게 들어찬 2층이 있고 홀 구석구석 마다 홀로 식사를 하는 이들이 있는 그곳이라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메뉴는 전형적인 중국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집의 묘미는 요즘 무슨 무슨 맛집처럼 하나만 딱 먹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마음이 통하는 몇몇과 함께 테이블 하나를 잡고 메뉴를 여럿 시켜야 한다.

오래된 집이 보통 그렇듯 이 집도 메뉴 뭐 하나 빠지지 않지만 그래도 닭고기를 튀겨 마늘소스를 곁들인 뒤 양상추와 함께 내는 유린기, 그리고 고기와 해삼 등을 얇게 채 쳐서 빠르게 볶아낸 유산슬은 시켜보는 편이 좋다. 바삭하게 튀긴 유린기 닭튀김의 겉면은 아삭거리고 고기는 부드럽게 씹힌다. 양상추는 튀김옷과 함께 왈츠를 밟듯 경쾌한 식감을 이루고 달고 짭조름한 마늘소스는 변박자로 요리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칼질과 빠른 타이밍에 양념을 넣고 볶아야 하는 기술이 중요한 유산슬은 의외로 제대로 하는 집이 드문 요리다. 사람들의 취향은 탕수육과 같은 튀김 요리로 쏠리고 있고 덕분에 유산슬과 같은 볶음 요리는 아예 취급하지 않는 곳도 많다. 그러나 간장이 뜨거운 열을 만나 캐러멜과 같은 독특한 향기를 만들고 해삼, 돼지고기, 아스파라거스 같은 재료들이 소스의 힘에 하나의 요리로 만들어지는 모습은 중식당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기다란 중화풍 젓가락으로 중국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요리를 나누어 먹는 정취 역시 그렇다.

관광지의 소음도 비껴가는 장인의 맛, 혜빈장

광화문을 떠나 서쪽으로 멀리 길을 떠나면 동인천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는 ‘혜빈장’에 다다른다. 조악한 장식물과 뜨내기손님을 끄는 세트 메뉴가 장악한 인천 차이나타운은 소문만 무성하고 실제 먹을 것은 드물다. 그곳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 무심히 콘크리트 도로가 깔렸고 사람들이 터벅터벅 걸으며 잠시 허리를 펴며 쉬는 곳에 혜빈장이 있다.

페인트칠한 단층 건물에 문을 당겨 들어가면 안에는 테이블 몇몇이 단출히 놓여 있을 뿐이다. 주방에 서 있는 요리사는 한눈에도 은퇴를 앞둔 것처럼 보이고 홀에서 손님을 맞는 이 역시 일반 정년을 훌쩍 넘어선 것이 확실하다. 이곳은 메뉴가 다른 곳처럼 길지 않다. 손님이 적은 수가 아닌 것이 첫째 이유, 혼자서 주방을 보는 노구(老軀)가 이겨낼 수 있는 노동의 한계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오는 음식을 보면 타협이 이루어지는 지점은 낮지 않다. 주방을 홀로 책임지기 때문에 주문이 밀리면 꽤 기다려야 한다. 바쁠 때 후루룩 먹고 가는 식당은 아니다. 하지만 바다를 가까이 한 동인천의 옅은 소금물 냄새, 그 냄새와 함께 바래간 건물과 켜켜이 쌓인 시간을 느끼다 보면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리라.

주방에서 치익치익 채소가 불에 닿아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흘러나오면 식욕이 조금씩 요동친다. 어릴 적 동네에 놀러 나갔다가 들어와 허기진 마음으로 밥상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얌전히 앉아 있으면 어느새 그릇이 앞에 놓인다. 산미가 진하게 풍기는 옛날식 탕수육도 좋지만, 이곳에서 무조건 먹어봐야 할 음식은 간짜장과 짬뽕이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음식이지만 이곳의 음식은 시간 속에 희석되거나 바래지지 않은 힘이 담겨 있다.

채소와 고기를 칼로 잘게 다진 뒤 춘장과 함께 볶아낸 간짜장은 질척거리거나 둔탁하지 않다. 한가닥 한가닥 선이 보이는 수공예품처럼 간짜장의 재료는 알알이 살아 있다. 면을 슥슥 비벼 입에 넣으면 강한 자극보다는 유순히 머리를 쓰다듬는 정겨운 맛이 느껴진다. 단맛은 절제되어 있고 간간한 맛은 해무처럼 그윽하게 깔려 튀지 않는다. 짬뽕은 그에 비해 맛이 강하다. 바닷가에 앉아 해산물을 듬뿍 넣어 끓인 탕처럼 매운맛이 의외로 강해 이마에 땀이 조금씩 맺힌다. 그릇을 비울 때쯤 해서는 ‘캬’하는 탄성도 나오는데 그때마다 무심히 흘러간 시간이 몸으로 느껴진다.

수타면이 불러오는 추억의 그 맛, 현래장

먼 길을 돌아 다시 서울로 올 시간이다. 서울에서도 오래전부터 음식점이 많았던 마포의 ‘현래장’으로 가보자. 불교방송국 빌딩 지하에 있는 현래장은 마포 먹자골목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다. 상가도 몇 되지 않는 지하에 무슨 중국집일까 생각하다 막상 그 앞에서 서면 꽤 큰 규모에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안으로 들어서면 멀리 통유리로 막힌 주방이 보인다. 그 안에는 머리가 하얀 주방장에 가운데 섰고 그 양 옆으로 당당한 체격의 요리사가 몇 서서 중화 냄비와 칼을 잡고 있다.

이곳의 모든 면 요리는 수타면을 쓴다. 당연히 면 요리에 강점이 있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는다. 포슬포슬한 감자와 달달한 양파를 크게 썰어 넣은 옛날짜장은 잊혔던 기억을 새삼스럽게 되살린다.

어머니에게 졸랐던 짜장면, 졸업식 날이면 으레 먹었던 짜장면, 군대 휴가를 나와 먹던 짜장면, 그 하찮은 음식과 맞닿은 추억이 너무 많아서 실상 제대로 세어지지 않는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여 이뤄낸 나란 사람. 그런 상념들이 흩어지며 입속으로 짜장면을 밀어 넣는다. 탄성이 있는 면발은 기계로 뽑은 것과는 결이 다른 쫄깃한 맛을 낸다. 면발이 입술을 치고 목구멍을 때린다. 진한 갈색빛을 한 짜장에 얽힌 단맛과 짠맛, 고소한 풍미.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맛이다. 그래서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맛과 시간이 면처럼 얽혀 몸에 스며든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